북한의 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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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북한의 문화유물보호법에 의거해 가치가 크다고 평가돼 지정된 문화재들이다. 비록 분단된 상태지만 남북은 한국사를 공유하고 있으므로 대한민국의 기준으로도 귀중한 가치를 가진 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
남한에는 별로 없는 고구려계 국보가 많으며[2] 발해, 신라계 국보도 있다. 고려왕조의 옛 도읍 개성이 북한 치하에 있어 고려계 국보도 많고 고려만큼은 아니어도 조선이 북한 전역을 관할한 만큼 조선시대의 국보도 적지 않다.[3] 단 현 북한 영토와 인연이 없던 백제계 국보는 단 하나도 없다.[4] 신라의 경우 삼국통일 이전은 2개의 진흥왕 순수비 정도고 대부분 통일신라 문화재다.
북한의 꼴이 말이 아닌지라 보존이 걱정이 되지만 적어도 평양과 개성 일대 및 고구려 및 고려 유적은 생각보다 잘 관리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이 자신들의 정통성을 고구려와 고려에 대고 있는 만큼 북한 방문 학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단군릉처럼 요상하게 변형시킨 경우나 정릉사 같이 고증이 부족하게 복원한 경우는 있어도 적어도 막 관리되고 있지는 않다고. 특히 평양 안에 있는 유적들은 소위 혁명유적 다음으로 관리되는 수준이라고 한다. 물론 왕건릉을 제외한 고려왕릉의 경우처럼 새로운 발굴 조사와 정비는 꿈도 꾸지 못한 상황이다.
남한처럼 선진화된 항온항습의 수장고나 최신 발굴조사는 힘든 상황. 국보급 회화들도 그냥 실온에 방치되어 있다고 한다. 아마 과거의 간송미술관의 전시 수준을 상상하면 될 듯. 1960년대까지는 워낙 일제강점기 때 교육받은 고급 지식인이 많이 월북했고 고고학과 역사학 분야도 마찬가지라 미송리형 토기 등 앞서가는 성과들을 내놨지만 김일성 유일체제 이후 당에서 지시받은 대로 성과를 낼 수밖에 없어 연구 성과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북한에서 발행하는 유일한 역사학 학술지인 <력사과학>을 보면 2/3가 김부자의 혁명사업에 대한 것이고 나머지가 순수 역사학... 그나마도 논문이 3~4페이지에 불과하다.
2. 국보유적과 국보유물[편집]
일본의 영향을 받아 건조물과 동산문화재(회화, 공예, 조각, 서적 등)을 동시에 국보와 보물로 지정하고 유적지는 사적으로 지정하는 남한과는 달리, 북한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 사적과 건조물을 합쳐 국보유적으로 동산문화재는 국보유물로 지정한다. 국보유적과 한단계 아래인 보전유적은 지정번호까지 잘 알려져 있으며 이것이 흔히 북한의 국보라고 알려져 있는 목록이다. 통일부나 문화재청에서도 공개중이다.
반면 국보유물과 한단계 아래인 보존유물은 목록이 대외비라고 한다. 2006년 북한의 왕건상 등 국보급 문화재가 남한의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될 때 일부 유물이 국보유물이라고 표기되어 실체가 알려졌고, 이후 남북교류사업 때 조선중앙력사박물관 도록이 남쪽에서 출판되면서 일부 국보유물이 소개되었다. 그러나 역시 전체적인 규모와 목록은 미상이다.
한편 2017년 발굴된 고려 숙종의 영릉의 재정비된 사진이 2020년 공개됨과 동시에 영릉이 국보유적 제36호로 지정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국보유적 지정체계가 재편된 것으로 보인다. 기존 국보유적 제36호는 동명왕릉이었다.관련 기사
현재까지 알려진 북한의 국보유물 수준은 왕건상, 고려 금속활자 등 남쪽에서 찾기 어려운 대단한 유물도 몇 있으나 대체적으로 수준이 낮다. 남한이라면 보물 지정도 통과하기 어려운 19세기 청화백자들도 막 지정되어 있을 정도이고 불상 같은 불교유물은 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38선이 그일 당시 평양을 제외한 한국사의 고도 및 역사적 도시들이 거의 전부 남한에 위치한 탓에 분단 이후 그 유물들을 남한 정부가 전부 가져갔기 때문이다. 개성의 경우 전후 북한에 귀속되었으나 이미 4년전인 1949년 5월 18일자로 국지전이 벌어지고 박물관 앞마당에 포탄이 떨어지는 등 사태가 심상치않게 흘러가자 개성박물관 수중의 고려시대 유물들은 흥국사 탑이나 적조사 철불등 크기가 큰걸 제외하고 서울을 거쳐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부산 등으로 이전되었기에 북한이 손쓸 수 없었다.
3. (구)북한의 국보유적 목록[5][편집]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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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0년경 국보유적 지정체계가 개편되었으나 고려 숙종의 영릉이 국보유적 제36호로 새롭게 지정된 것 외에는 나머지 국보유적들의 개편 현황을 알 수 없다.[2] 남한에도 고구려 관련 동산 문화재는 생각보다 꽤 있는 편이다. 하지만 핵심은 없다시피 하고, 고구려 관련 부동산 문화재는 군사보루 정도 제외하면 거의 없다.[3] 단 하단에서 후술하듯 고려시대의 유적 국보는 많아도 유물 국보는 적다.[4] 북한 지역과 백제가 아예 상관없진 않다. 백제가 전성기를 달리던 4세기 근초고왕 재위기에는 백제의 영역이 북상해 황해도 중북부까지 닿았었다. 평양 바로 밑에 있는 황주에서도 백제 토기 파편이 수습된 바 있다. 하지만 그 기간이 20여년으로 매우 짧았기에 국보로 지정될 만한 유의미한 백제 문화재는 북한에 아예 없다고 보면 된다.[5] 2020년경 국보유적 지정체계가 개편되었으나 고려 숙종의 영릉이 국보유적 제36호로 새롭게 지정된 것 외에는 나머지 국보유적들의 개편 현황을 알 수 없다.[6] 2017년 발굴된 고려 숙종의 영릉이 2020년 재정비와 함께 국보유적 제36호로 지정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기존 국보유적 지정체계의 개편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기존 국보유적 제36호였던 동명왕릉을 포함한 국보유적들이 새로운 번호로 재지정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7] 2017년 발굴된 고려 숙종의 영릉이 2020년 재정비와 함께 국보유적 제36호로 지정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기존 국보유적 지정체계의 개편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다른 국보유적들의 새로운 번호를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